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슬러 잡지 대 제리 팔웰 (문단 편집) == 후일담 == 이 판결 과정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[[래리 플린트(영화)|영화화]] 되기도 했다. 보면 알겠지만 사실 래리가 거창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총대를 맸다기보다는, 그냥 성질 더러운 인간이 법정싸움에서 자기에게 유리할 방법을 찾다가 표현의 자유 문제로 확대시켰더니 얼떨결에 대표가 되고 이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. 하지만 진의가 어떻든 간에 [[결과는 좋았다|결국에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다.]] 언론사상을 배우는 대학 수업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사건이다. 놀랍게도 폴웰과 플린트는 이 사건이 있은지 한참후 [[래리 플린트(영화)|영화 래리 플랜트]]가 개봉했을때 본 사건이 다시 회자되자 함께 [[래리 킹]]의 토크쇼에 초청을 받은 것을 계기로 사적으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. 어찌보면 이 사건에서 판결 다음으로 최대의 반전이다. 이 토크쇼 이후 폴웰이 플린트를 찾아와서 자신과 함께 대학생들 앞에서 공개토론을 여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하고 플린트가 이에 응하면서 연이 닿아, 가치관이 정반대인 두 사람은 이래저래 자주 붙어다니게 되면서 친분을 쌓아가기 시작했다.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폴웰이 플린트네 집에 자주 놀러오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서로 교환하는 등 발전하여, 폴웰이 사망할 때까지 계속 둘의 친분이 유지됐다. 이후 폴웰이 죽고난 뒤 플린트가 그에 대한 기억과 회한을 담은 글을 신문사에 기고했는데, 여전히 폴웰의 사상이나 도덕관에 공감하지는 못하겠고 폴웰이 대체 무슨 의도로 자신과 친구가 되고자 한건진 여전히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"대중도, 나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'''사건의 궁극적인 결말은 바로 우리 두사람이 친구가 되었다는 것.'''"이란 글을 통해 폴웰을 기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